코로나 전담병원 의사의 글

활력이 넘치는 까마귀 금오 익명 2021.01.22 조회 수 1741 추천 수 0

오른쪽 폐가 하얗다. 고개를 숙여 작성했던 지원서를 들여다 보았다. 이낙준. 이비인후과 전문의. 코로나 전담 병동 지원. 경증 환자 진료 가능. 중환자실 불가. 다시 고개를 들어 환자 엑스레이를 들여다 보았다. 어떻게 봐도 오른쪽 폐가 하얗다. 단지 지저분한 수준이 아니다. 그냥 한쪽 폐가 없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중환자다. 폐가 온통 하얗다.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기관절개술 받은 환자들 절개 부위 정리해줄 때까지만 해도 와야 할 곳에 마땅히 온 것 같아 좋았는데. 눈 앞은 캄캄해지고 머릿속은 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차하면 부르세요. 저 요 앞에 사니까. 피로함이 잔뜩 묻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급하게 퇴근하던 병동 과장님 얼굴에 불안감이 엿보였다. 하긴 나 같아도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폐렴 환자 12명을, 그것도 중증 폐렴 환자가 셋이나 끼여있는 병동을 맡기고 집에 가려고 하면 차마 발이 안 떨어질 것 같다. 그러니 지친 와중에도 저런 말을 남겼을테지. 어지간하면 힘들어 보이는 그를 다시 부를 생각은 없지만. 믿는 구석이 생겨서 일까. 아까보다는 머리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바이털 사인을 살피니 폐 소견에 비해 아직까지는 안정적이었다. 산소 요구량도 5리터 정도에 포화도는 97%. 심장 박동수나 혈압 등도 변화는 없었다. 내과 친구에게 물어보니 당장 어떻게 될 거 같진 않으니 일단 원인부터 찾아 보자는 답이 돌아왔다. 그 외에도 상태가 악화 되거나, 이제 막 전원 온 환자들이 있어 CT 처방을 네 개 내었다. 그 중 한명은 원인 모를 고혈당이 있어 가슴 뿐 아니라 복부 쪽 CT도 찍기로 했다. 처방에 따라 감염존의 간호사들이 분주해졌다. 의사는 무슨 일이 생겨야 들어가지만, 간호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최소 2시간 가량 감염존에 머물렀다. 고맙게도 덥고, 숨도 가쁜 와중에도 힘든 기색을 애써 감추고 환자를 이송용 음압 텐트 안에 옮기고, CT실로 향했다. 덕분에 얼마지 않아 CT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우측 폐는 쪼그라들어 있어도 남은 흉강은 물이 채우고 있었다. 물론 섯불리 물이라 판단하기엔 경험도 지식도 부족했기에 영상의학과 교수인 아내에게 물었다. 제일 먼저 돌아온 말은 판독 따위가 아니라 내가 볼만한 환자는 아니란 의견이었다. 십분 동의하는 바였기에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그저 좀 더 불안해졌을 뿐. 하여간 영상의학과 교수와 내과 교수의 의견을 취합하니 일단 물을 조금이라도 빼주는 방향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PCD를 박는게 제일 좋다고 했으나 그건 내 역량을 한참 벗어나는 일이었다. 대신 인턴 때도 여러번 해본 흉강천자라도 하기로 했다. 원인 모를 고혈당이 온 환자는 급성 췌장염인듯 췌장이 지저분했다. 아밀레이즈와 라이페이즈를 확인해보니 과연 올라 있었다. 폐가 좋지 않았으므로 수액은 조심스레 주기로 했고, 고혈당에 대해서는 인슐린 치료를 하기로 했다. 다른 환자는 폐렴도 폐렴이었으나 흉부 CT 끝에 살짝 걸친 복부 부근에 우측 수신증이 보였다. 당장 뭘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익일 PCN을 의뢰하기로 하고 소변 관련한 검사 랩을 추가했다. 자 이제 흉강 천자만 하면 되나. 각오를 다지며, 술기를 복기 하면서 레벨 디 방호복을 향해 걸었다. -선생님, 13호 환자 포화도 떨어집니다. 그때 노티가 들려왔다. 13호? 지금 안 좋은 환자는 13호가 아니라 5호에 있는데. 모니터링 기기를 보자 정말로 산소 포화도가 아까에 비해 5% 가량 떨어졌다. 내 심장도 덩달아 쿵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애써 침착을 가장했다. 저 정도는 측정장치가 조금만 흔들려도 가능하잖아? 직접 가서 조정해 보고 증상 확인이 가능하면 문진도 해주길 요청했다. 제발 아무 문제 없기를 바라면서. -숨도 차다고 합니다! 모니터링 장치는 제대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병원에서 대개의 낙관은 빗나가기 마련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사진을 띄우자 마자 한숨이 나왔다. 기흉이었다. 작지도 않았다. 흉관 삽입의 적응증을 한참 넘어섰다. 이전에도 딱히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엉망이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흉강 천자에 흉관 삽입이 더해졌다. 둘 다 지금 안하면 환자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기흉 환자는 아마 죽지 않을까. 도저히 긴 밤을 견딜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넘어 속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왜 메이저, 소위 내과 외과 등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는지 다시 한번 상기하는 기분이었다. 내 손 끝에 환자의 불편함이 걸려 있는 것까지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지만, 생사가 오가는 현장은 부담스러움을 넘어 무섭다. -아이고, 선생님. 그때 누군가 병동 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돌아보니 병동 과장님이었다. 떠날 때보다 어째 더 지쳐보였다. 알고보니 병동 돌아가는게 심상치 않은 것을 넘어 준중환자실 수준이 되자 시니어 간호사님이 그쪽으로도 노티를 한 모양이었다. 병동에 남은 이가 내가 아니라 내과나 다른 바이털 과였다면 올 필요가 없었을텐데. 지금쯤 단잠을 자도 좋았을텐데. 그는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기어코 병동에 돌아왔다. -제때 검사 잘하셨네요. 죄송합니다. 아직 중환자실이 따로 열리지 않아서 너무 험하죠? 이틀만 참아 주세요. 그럼, 같이 들어가실까요? 흉관 삽입은 보조가 필요합니다. 기왕 하는거 PCD도 넣고요. 그러면서도 내 탓은 하지 않았다. 도리어 칭찬만 들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전공과를 내과로 할 것을 하는 후회가 들었다. 내 하잘것 없는 비애감과 관계없이 병동은 구세주라도 만난듯 빠르게 반전되었다. 흉관이 들어가자 기흉으로 쪼그라 들었던 폐가 펴지면서 환자가 회복되었다. PCD를 넣어 물이 빠져 나오자 다른 환자도 아까보다는 확연히 좋아 보였다. -그럼 부탁합니다. 화이팅. 과장님은 그렇게 두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키고는 또 다시 사라져갔다. 여전히 불안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홀로 남게된 이비인후과 의사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마 중환자실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내내 이럴테지. 중압감 때문인지 속이 쓰려왔다. 실로 오랜만에 제산제를 꺼내 먹었다. Ps. 긴밤입니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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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코로나 조심합시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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