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까지 68일 남은 오늘의 괴담

나랑 여동생은 항상 할아버지 말을 잘 들었다.

언덕엔 가까이 가지 마라, 매일 밤 잊지 말고 우유와 빵 한 조각을 창문틀에 올려두거라, 쇳조각 목걸이를 절대 벗어서는 안된다.

그래야 안심이 돼서 그런단다. 다 언덕 사람들로부터 안전을 지키고 할아버지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란다.

우린 항상 할아버지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내가 열 살이 되던 해에 도시에 사는 사촌형이 놀러왔다. 형은 우리가 창문틀에 우유와 빵을 내놓는 걸 보자마자 이죽거렸다.

그래서 여동생이랑 나는 사촌형이 잠들었을 때 몰래 형 대신 형 창문틀에 우유와 빵을 올려두고 형 신발에 쇳조각도 잘 숨겨뒀다.

집에 오는 길을 잊지 않도록 왼쪽 신발코에는 호랑가시나무 이파리도 넣어뒀다. 할아버지도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셨을 만큼 열심히 했다.

정말 얼마나 열심히 형을 지켜주려고 했는지 모를 정도로.

하지만 형은 내 여동생을 밀쳐 넘어뜨리고 촌놈들이니 머저리니 하는 못된 말을 했다.

형은 언덕 너머 사람들따위 믿지 않는다며 자기가 12살이나 됐는데 저 언덕 너머 난쟁이들이 뭘 어쩌든 다 때려눕히겠다며 호기롭게 말했다.

나랑 여동생은, 우리는 대신 사과하고 싶었다. 그들이 마음을 풀 수 있도록 빵 위에 설탕도 뿌렸다.

하지만 그들은 자비를 모르는 자들이었다.

아침에 우리가 내놓은 우유는 완전히 상해서 덩어리지고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같이 내놓았던 빵도 까맣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젖소 젖도 다 말라버리고 달걀도 속이 비었다며 걱정하셨다. 그래서 우리한테 늘 하던 일을 잊은 건 아니냐고 물어보셨다.

우리는 할아버지 말대로 다 했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사촌형은 안 했다는 이야기는 말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걱정하고, 언덕에 대해 생각하지 마셨으면 했다.

다음날 아침 사촌형이 사라졌다.

형 방에는 온통 단풍잎만큼 조그만 손자국과 발자국이 다닥다닥 묻어 있었고 창틀에는 큼지막한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레프리컨이다, 브라우니가 온 게야, 픽시가 기어코 일을 내는구나 하며 숨죽여 되뇌이셨다.

할아버지는 절대 언덕 사람들이라고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들이 형을 데려간 것이다.

그날 오후 할아버지는 언덕으로 가셨다.

할아버지는 나랑 여동생의 머리칼을 조금 잘라 호랑가시나무 잔가지에 얽어 준비하고, 물푸레나무 지팡이와 쇠로 된 칼을 챙기셨다.

그리고 무쇠와 구리 팔찌와 목걸이를 주렁주렁 매고 또 선물도 따로 챙기셨다.

누구든 언덕에 갈 때는 반드시 선물을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3주째가 돼서야 집에 돌아오셨다.

그동안 할머니가 우리를 돌봐주시고 매일 씻겨주고 밥도 챙겨주시면서 할아버지는 꼭 돌아오실 거란다, 하고 자애롭게 말씀해주셨다.

정말 할아버지가 할머니 말처럼 돌아오셨고, 사촌형이라며 한 아이도 같이 데려오셨다.

할아버지나 사촌형이나 지저분하고 생채기가 가득한 게 몰골이 말이 아니었고, 할아버지는 그새 폭삭 늙으신 것만 같았다.

사촌형은 숲에 놀러갔다가 길을 잃었을 뿐이라며 물가에서 할아버지를 만나 집에 왔을 뿐이라며, 언덕 사람들따위 전혀 안 믿는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하지만 사촌형 눈은 녹색이 아니고 파란색이었는데.

사촌형은 밤에 창가에 앉아 우리가 내놓은 우유를 마시면서 빵을 맘대로 먹고 노래부르지 않았는데.

사촌형은 우리를 보면서 노래를 불러주거나 윙크해주거나, 쇳조각 목걸이따위 벗어버리고 놀러 가자고 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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