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까지 102일 남은 오늘의 괴담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5년 6월 어느 금요일...

 

 

나는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지겨운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평소 나와 어울리던 절친 4명은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바쁜 모양이지...

 

 

[야, 니 어디 갈낀데? 갈 데 없으면 PC방이나 가자.]

 

 

[니는 허구한 날 PC방이고? 난 안 갈란다. 가 봤자 할 것도 없다.]

 

 

 

 

[그래, PC방은 좀 아이다. 우리 노래방 갈래?]

 

 

[그래, 차라리 노래방이 낫겠다.]

 

 

[그럼 오디션 갈꺼가?]

 

 

 

 

[아이다, 거기 아줌마 서비스 별로 안 준다. MP3 가자.]

 

 

그렇게 우리는 노래방으로 향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친구들과 좁은 방 안에서 놀고 있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핸드폰을 가지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내 가장 친한 친구인 남석이 전화다.

 

 

 

 

무슨 일일까?

 

 

[여보세요?]

 

 

[마, 니 지금 어데고?]

 

 

 

 

[MP3다. 와?]

 

 

[니가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이다, 임마. 니 어제 기현이 학교 조퇴하고 간 거 알제?]

 

 

[어, 어제 보니까 금마 표정이 말이 아니던데 뭔 일 있나?]

 

 

 

 

[어제 금마 아버지 돌아가싯다. 그래서 전화 받고 간 거 아이가. 어제 조퇴하고 나서 쭉 병원 빈소에 있는 거 같은데 함 가봐야제. 니도 지금 온나.]

 

 

[진짜가? 알았다. 어디 병원인데?]

 

 

[A동 성심병원이라고 아나? 나도 잘 몰라가 민균이한테 물어서 가고 있다.]

 

 

 

 

[아, 내 거기 안다. 글로 가면 되나?]

 

 

[어, 잘됐네. 병원 앞에 있을테니까 퍼뜩 온나.]

 

 

[그래, 알겠다.]

 

 

 

 

기현이에게 무슨 위로를 해 줘야 할까...

 

 

나는 전화를 끊고 노래방에 있는 친구들에게 사정을 말한 뒤 노래방을 빠져나왔다.

 

 

시끄러운 시내 한복판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간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가 막혀 30분이 지나도록 도착을 못해, 나는 한 정거장 먼저 내려 병원 쪽으로 달리기로 했다.

 

 

A동은 할머니댁이 있는 동네라 명절 때마다 오기 때문에, 이 곳 지리를 대충이나마 알아 성심병원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병원 입구에는 기현이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 셋이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타. 차가 밀리가 좀 늦었다.]

 

 

[내도 방금 왔다. 퍼뜩 들어가자.]

 

 

 

 

우리는 그렇게 기현이 아버지 빈소로 들어갔다.

 

 

안에는 일가친척들과 함께 있는 기현이가 보였다.

 

 

먼저 기현이에게 유감이라는 말과 함께 최대한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해 주었다.

 

 

 

 

나는 기현이가 정신도 못 차리고 슬퍼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기현이는 담담하게 우리를 맞으며 고맙다고 반겨주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빈소 곁에 차려진 탁자에 앉아 음식과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기현이의 표정이 너무 우울해보여 우리는 일부러 농담도 던지고 장난도 많이 쳤다.

 

 

 

 

그러던 와중 문득 빈소 안 쪽의 영정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1번 빈소에는 어느 할머니, 2번 빈소에는 친구 아버님...

 

 

그리고 3번 빈소에는 어느 젊은 여자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무척 젊은 듯했고, 연예인 뺨치게 예쁜 얼굴이라 눈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와, 저 여자도 죽었나보네. 진짜 예쁘고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

 

 

[그러게. 와... 근데 진짜 예쁘네.]

 

 

 

 

[생긴 걸로 보니 어디서 강간이라도 당하고 충격 받아서 자살한 거 아이가?]

 

 

그 때 나는 장난이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우리가 병원에서 나왔을 때 이미 시간은 밤 11시를 약간 넘은 뒤였다.

 

 

 

 

친구들은 전부 버스와 택시를 잡아 집으로 떠났다.

 

 

하지만 방금 택시를 잡은 남석이에게 마지막 남은 만 원을 빌려준 탓에 내게 남은 돈은 삼천원이 고작이었다.

 

 

집까지 돌아가기에는 한참 모자란 돈이었다.

 

 

 

 

기현이에게 부탁해 돈을 빌려볼까도 생각했지만,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 같은 상황에는 말을 선뜻 꺼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근처에 있는 할머니댁에서 하루 자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친척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허락을 구했다.

 

 

 

 

다행히 누나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그래. 누나는 지금 밖이라 나중에 들어갈거야. 집에 할머니 계시니까 문 열어 달라고 말씀 드려라. 아직 안 주무실거야.]

 

 

나는 집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어차피 내일 학교 안 가니까 할머니 댁에서 자고 내일 갈게.] 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할머니 댁으로 가게 되었다.

 

 

[벽산 아파트 가 주세요.]

 

 

할머니 댁은 위치가 조금 특이해서, 주변에 냉동창고와 공장들만 즐비한 사이로 언덕을 올라가면 딱 한 동만 세워진 아파트였다.

 

 

 

 

그렇게 언덕 위에 있는 곳이다보니 주변은 죄 산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를 바라보는데, 그 날따라 이상하게 굉장히 오싹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날 내려준 택시가 출발하고, 나는 아파트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 입구까지는 50m 정도의 거리였다.

 

 

입구 쪽으로 한 발자국 내딛었을 때, 주머니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 늦은 시간에 누군가하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발신자 표시제한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아... 누가 또 이런 장난을 치노? 여보세요?]

 

 

[......]

 

 

 

 

전화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조용해 전화가 끊어졌나 싶어 액정을 보았지만, 통화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여보세요?]

 

 

 

 

[......]

 

 

나는 이상하다 싶어 그냥 그렇게 첫번째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런데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여보세요?]

 

 

[......]

 

 

 

 

[야, 이런 장난 치지마라. 니 진짜 잡히면 뒤진다.]

 

 

나는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었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나 곧이어 또다시 걸려온 전화에 나는 다시 전화를 꺼내야만 했다.

 

 

 

 

역시나 발신자 표시제한이다.

 

 

[하... 마, 니 누고? 자꾸 장난 칠래?]

 

 

그 때였다.

 

 

 

 

[산... 토끼... 토끼야...]

 

 

아주 작고 가느다란 여자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기에 나는 조용히 하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산... 토끼... 토끼야...]

 

 

이번에는 확실히 들렸다.

 

 

 

 

[뭐야...? 니 누군데...?]

 

 

하지만 여자는 내 물음에는 대답도 않고 계속 산토끼만을 중얼거렸다.

 

 

화가 난 나는 [아, 씨발! 장난 작작 치라고!] 라고 화를 낸 뒤 앞으로 한 발짝 내딛었다.

 

 

 

 

[어... 디를... 가... 느냐....]

 

 

순간 등 뒤로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너무나도 소름끼치는 목소리였다.

 

 

 

 

도대체 뭐지...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으... 으...]

 

 

 

 

겁에 질린 나는 전화를 끊고 아파트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것은 전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전화는 끊었지만, 아까 들었던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마치 바로 내 옆에서, 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깡... 총... 깡... 총... 뛰... 어서... 어... 디를... 가... 느냐....]

 

 

[으... 으악!]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더 빠르게 달려 7층의 할머니 댁을 향해 계단을 뛰어 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내 귓가에는 계속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윽고 할머니 댁에 도착한 나는 미친 듯 할머니 댁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귓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무렵, 안에서 [누구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셨다.

 

 

 

 

나는 할머니를 본 순간 온 몸의 긴장이 풀리며 할머니 품에 안기려 했다.

 

 

[할머니!]

 

 

탁!

 

 

 

 

그러나 할머니는 휘둥그레한 눈으로 나를 보시더니, 손으로 나를 밀쳐내셨다.

 

 

[니... 니, 거기 그대로 있으래이. 꼼짝 말고!]

 

 

그리고는 집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가시더니 소금을 한 웅큼 집어오셔서 그걸 내게 뿌리시는 것이었다.

 

 

 

 

[하, 할머니! 왜 그러세요!]

 

 

[니 가만 있그래이! 와 이 년이 여기 붙어서 안 가노!]

 

 

나는 아직도 그 때 할머니가 혼자 중얼거린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집 안에서 소금을 바가지채 가지고 오셔서 나에게 몽땅 뿌리셨다.

 

 

그 후에야 내 손목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겁에 잔뜩 질린 채 부들부들 떨었고, 할머니는 그런 내 손을 잡으며 물으셨다.

 

 

 

 

[니 오늘 어데 다녀왔노? 사람 죽은데 갔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믄 니 거기서 죽은 사람 흉 봤나?]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고, 이 놈의 자슥아! 와 그랬노, 와! 하이고, 참말로 큰일 치룰 뻔 했네...]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내 등을 손으로 치셨다.

 

 

 

 

[니 다음부터는 절대 그라믄 안 된다, 알겠나? 아이다, 아예 사람 죽은데는 가지도 마라.]

 

 

그리고 그 후 내가 할머니에게 들은 말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할머니가 문을 열었을 때, 잔뜩 겁에 질린 내 등에 검은 옷을 입고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자가 업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창백한 표정을 한 채, 얼굴을 내 귀에 바싹 들이대고 할머니를 째려보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말한 여자의 인상착의가, 3번 빈소에 있던 영정사진 속 여자와 똑같았던 것이다.

 

 

 

 

문득 생각이 나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봤지만,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걸려왔던 세 통의 전화는 통화내역에 없었다.

 

 

아직도 가끔 그 날의 소름끼치는 노랫소리가 떠오르곤 한다.

 

 

[산... 토끼... 토끼야...]

 

 

 

 

 

 

https://vkepitaph.tistory.com/m/690?category=35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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