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열전: 화낙] 일본의 은둔형 기업... 기술자 우대로 전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 장악
[IT동아 강일용 기자] 일본의 화낙(FANUC)은 금속을 깎고 모양을 정교하게 만드는 금속 절삭 분야의 최고업체다. 혁신의 대명사인 애플은 물론이고 삼성전자도 이 업체의 자동화기기를 구입해 아이폰과 갤럭시 스마트폰의 금속 케이스를 다듬는다. 자동화된 로봇이 정밀하게 가공할 수 있는 기술력은 전세계에서 이 회사 제품을 따라갈 만한 제품이 없다. 화낙이 없으면 아이폰과 갤럭시가 생산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무리 비싸도 이 회사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2014년 기준 매출 7298억 엔, 영업이익 2978억 엔을 기록하면서 영업이익률은 40.8%를 기록했다.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5~8%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경이로운 수준이다.
다재다능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 로봇에만 매달린 로봇장인
화낙을 사업 초기부터 진두지휘한 이나바 세이우에몬(稻葉淸右衛門-93) 화낙 창업자 겸 명예회장은 일본의 산업분야를 이끈 전설의 기업인들과는 다른 행보를 걸었다. 소니를 세운 모리타 아키오를 비롯해 성공한 일본 기업인들은 바로 창업가의 길로 뛰어든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는 회사에서 샐러리맨이자 기술자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는 자신이 기술인이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강하게 드러낸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 기기를 만드는 회사를 세운 기업인이면서도 회장이라는 직함 보다는 공학박사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고.
그는 1925년 일본 이라바키현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공대에서 공학 전공을 졸업하고 후지쯔엔 1946년 입사한 엘리트 엔지니어였다. 후지쯔에서 공작기계 개발을 맡은 이력이 독특하다. 그는 전후 복구기인 일본에서 숙련공의 부족 때문에 산업 발전이 늦어진다고 생각했다고. 부족한 숙련 일손을 대체하는 기계가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품으면서 자연스럽게 자동화 기계인 로봇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로봇 선진국과 자동화 기술에 대한 해외 기술을 틈틈이 연구하던 그는 해외서 개발한 마이크로프로세서(컴퓨터 중앙처리장치의 일종)를 기계에 도입할 것을 주장하면서 사내서 두각을 드러냈다.
회사도 그에 자동화 기기 분야 개발을 총괄하는 팀장급 엔지니어라는 중책을 맡긴다. 이 수재의 지휘 아래 후지쯔는 1956년 일본 최초로 컴퓨터수치제어(CNC) 공작기계를 만들어냈다. 이후로도 그는 꾸준히 자동화 기기 개발에 매달렸고, 성과를 인정받은 덕분에 그는 사내서 승승장구한다.
화낙은 일본의 B2B IT 기업 후지쯔의 사내 벤처로 시작한 회사다. 회사 이름인 화낙도 후지쯔의 자동공작기계(Fuji Automation NUmerical Conrol)의 약자다. 컴퓨터와 정보통신에 집중하는 모회사인 후지쯔와 달리 로봇에 집중하기 위해 세이우에몬 명예 회장은 46세 때인 1972년 후지쯔에서 독립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CNC 공작기계와 서보 모터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정한 뒤 지난 반 세기 동안 화낙은 다른 분야로 사업 진출은 일절 하지 않고 로봇 기술을 연구에만 집중했다.
지금도 화낙의 회의실에는 '다능은 군자의 수치'라는 글이 걸려 있다. 다른 곳에 눈길을 주지 않고 로봇 기술 연구 외길만 걸어온 세이우에몬 명예 회장의 경영 철학을 함축하는 글이다. 화낙은 후지쯔 등 후루카와 재벌의 자금을 지원받아 설립되었지만, 2009년 모든 자사주를 매입해 이제 후지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회사가 되었다. 세이우에몬 회장은 2000년대 후반부터 현업서 물러난 뒤 현재 그의 아들인 이나바 요시하루 회장이 화낙을 이끌고 있다
소니, 닌텐도, 캐논 등과 대등... 제조업 강국 일본의 간판
화낙은 산업용 로봇 업계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유명한 회사다. 스마트폰의 금속 외관을 다듬는 절삭 로봇(Robomachine) 분야는 80%, 온갖 물건을 만들어 낼때 쓰이는 수치제어공작기계(Numerical Control machine tool) 분야는 60%, 무인 공장의 필수 요소라고 평가받는 산업용 로봇 분야에선 20%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생산하는 로봇의 80%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독일의 쿠카(KUKA), 스위스의 ABB와 함께 산업용 로봇 업계를 삼분하고 있다.
전 세계 제조업계를 좌지우지하는 거물들이 화낙의 주요 고객들이다. 단순한 고객이 아니다. 화낙의 로봇이 있어야 제품을 제대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의 로봇을 쓰거나 자체적으로 로봇을 만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애플과 폭스콘은 아이폰 생산 공장에 화낙의 절삭 로봇을 10만 대나 도입했다.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알루미늄 유니바디(알루미늄을 통째로 깎아서 만들어낸 외관) 스마트폰을 생산하기 위해 화낙의 절삭 로봇을 2만 대 가까이 구매했다. 절삭 로봇 한 대당 약 1억 원 정도이니 무려 2조 원 어치다.
최근들어 자동차 생산에 부침이 있기는 하지만,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 모터스도 무인 공장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화낙의 로봇을 대거 구매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이 생산 효율 향상과 공장 자동화를 위해 화낙의 로봇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화낙은 놀라운 매출과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다. 40%대를 넘긴 2014년 이후로도 영업이익률이 30%를 기록하고 있다. 높은 영업이익률로 유명한 애플, 삼성전자(특히 반도체 사업부문) 등과 대등하다. 이러한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사내에 1조 엔에 가까운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2015년 기준). 회사 규모도 일본 내에서 손꼽힌다.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된 화낙의 시가총액은 5조 5000억 엔에 달한다. 소니, 닌텐도, 캐논, 유니클로 등과 함께 10위권 대에 위치해 있다.
일본 증시 상위에 위치한 거대 금융 재벌을 제외하면 열 손가락 내에 꼽힌다. 제조업 강국 일본을 상징하는 기업인 셈이다. 경쟁력이 워낙 뛰어나보니 화낙의 유일한 리스크는 로봇 생산 공장이 위치한 후지산이 다시 폭발하는 것 뿐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온다.
화낙의 가장 큰 저력은 무엇일까? 세이우에몬 명예회장의 철학처럼 본업에 충실해 기업 가치를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일본 본사의 전체 직원 3200여명 가운데 30%가 연구개발(R&D) 인력일 정도로 R&D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화낙의 고집스러운 `한우물 파기'는 기술력 확보, 신뢰성 향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우직한 행보 덕분에 보증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산업용 기기 시장에서 화낙의 가치는 더 높아지고 있다. 화낙은 특별한 A/S 기간과 방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화낙 산업용 로봇의 보증 기간은 무제한이다. 고객이 사용하고 있고, 화낙이 존속하는 한 산업용 로봇을 계속 고쳐주겠다는 뜻이다. 화낙의 창고에는 지금까지 화낙이 만든 로봇의 부품이 모두 보관되어 있다. 만약 로봇에 맞는 부품이 없을 경우 화낙이 다시 만들어서 고쳐준다. 기업에게 생산라인이 멈추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문제다. 고객의 비즈니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화낙은 독특한 A/S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로봇이 고장나면 즉시 이를 대체할 로봇을 설치해준다. 그 다음 고장난 로봇을 고친 후 생산라인이 잠깐 쉴 때 임시로 투입한 로봇과 교체한다.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노력... 원가 절감 유혹 물리치고 일본서만 생산
로봇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화낙의 노력은 집착이라고 표현할만큼 집요하다. 화낙 직원들은 외부와 이메일도 주고받을 수 없다. 외부 사람이 화낙에 연락하려면 팩스 같은 전통적인 방식을 이용해야 한다. 주주들에게 기업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화낙의 모든 로봇 생산 공장은 일본에 위치해 있다. 그것도 해안가 주변 공업 지대가 아니라 해발 1000미터의 후지산 기슭에 있다.
국립공원 내의 약 52만 평 부지에 공장, 연구소, 본사 건물, 직원용 숙소 및 복지시설 등을 모아놨다. 회사의 모든 기능이 한 군데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10년에 걸쳐 조성한 이 거대한 공장 부지를 사람들은 화낙의 숲이라고 부른다. 화낙의 숲 주변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토끼, 사슴, 여우 등 야생동물만이 서식하고 있을 뿐이다. 세이우에몬 명예 회장은 이러한 화낙의 숲을 만들면서 "외부 간섭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회사의 모든 인력을 한 곳에 모아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화낙의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화낙은 후지산 기슭 외에도 일본 내 세 군데에 추가 공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핵심 제품은 여전히 화낙의 숲에서만 생산하고 있다. 향후에도 생산 원가 절감을 위한 해외 생산 공장 같은 것은 만들 계획이 없다.
전 직원이 억대 연봉, 사실상 종신고용까지
하지만 이와 별개로 직원과 기술자들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있다. 화낙의 일본 내 직원수는 약 3200명 정도다. 이 가운데 2000여명이 후지산에 있는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절반이 로봇 연구 및 개발을 위한 엔지니어들이다. 화낙의 평균 연봉은 1300만 엔에 이른다. 일본 대기업들의 평균 연봉인 700만 엔의 두 배에 달한다. 전 직원이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셈이다. 직원들의 평균 나이도 42세다. 사실상 종신고용을 보장하고 있다.
세이우에몬 명예 회장은 회사 설립 당시부터 기술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본인이 도쿄공대 출신의 엔지니어였고, 아들이자 현 화낙 최고경영자인 이나바 요시하루와 손자이자 화낙 로봇사업본부장(전무)인 이나바 기요노리도 도쿄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다. 이렇게 놓고 보면 가족끼리 3대 세습을 하는 한국의 재벌 기업들과 다를 바 없어보인다. 실상은 다르다. 세이우에몬 명예 회장은 화낙의 주인(오너)이 아니다. 화낙의 주식을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아들과 손자도 마찬가지다. 단지 아버지의 뒤를 따라 엔지니어의 길을 걸은 후 화낙의 입사해서 두각을 드러낸 것 뿐이다. 요시하루 사장은 화낙의 최고경영자는 화낙을 이끌 수 있는 능력있는 엔지니어가 맡아야 한다며 설령 아들이라도 그 능력을 검증받지 못하면 최고경영자 자리를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뜻을 드러낸 바 있다. 이러한 지분 구조 때문에 요시하루 사장은 과거 헤지펀드로부터 화낙 경영권을 위협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경영권 유지를 위한 지분 확보를 하지 않았다. 회사를 운영할 실력만 있다면 기업 경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화낙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에 인공지능을 접목해 20%에 머무르고 있는 산업용 로봇 세계시장 점유율을 2020년까지 5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회사 내에 딥러닝(인공신경망) 관련 능력을 보유한 개발자를 대거 충원하고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 하드웨어 업체와 제휴를 맺었다. 인공지능을 품은 화낙의 산업용 로봇은 두 가지 강점을 갖추고 있다.
첫 번째는 공장 지능화다. 과거에는 공장 내 기계 10대 가운데 1대라도 고장나면 생산라인 전체가 멈춰야 했다. 이제 달라진다. 인공지능을 갖춘 산업용 로봇들이 고장난 로봇의 일을 분담해서 처리한다. 사소한 고장으로 생산라인 전체가 멈추지 않고 하나의 팀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과의 협업이다. 과거 산업용 로봇은 인간의 지시를 받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홀로 처리했다. 인공지능을 갖춘 산업용 로봇은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다. 로봇의 우직함과 사람의 섬세함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생산 라인을 만들 수 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출처: IT동아
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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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화낙 저기 들리는 소문으로는 회사에서 세습고용도 권장한다고... 기술 유출 당할까봐
옛날 성주랑 가신 문화에 영향 받은것이 아닐까...
ㅇㅇ 비회원
2019.02.24참사람인가? 뭐 신사람인가? 뭐 이상한... 사람 보다는 저게 좋다.
. 비회원
2019.02.24문과는 광광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