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1949년 포루투갈의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는 뇌의 전두엽 일부를 잘라 내어 정신병을 치료하는 이른바 <백질 절제술>에 관한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그는 전두엽 앞부분의 피질을 잘라내면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뇌 피질의 이부위는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들을 상상하게 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발견은 한 가지 중요한 저을 시사한다. 우리의 불안은 미래를 상상하는 우리의 능력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능력이 있기에 우리는 위험을 예감하게 되고, 언젠가는 죽으리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에가스 모니스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이는 길이다.
폭력
북미 인디언들은 서구인들이 오기 전까지 절제를 존중하는 사회에 살고 있었다. 폭력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의례의 형태로 행해졌다. 출산 과잉이 없었기에 인구 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전쟁도 없었다. 부족의 내부에서 폭력은 고통이나 절망적인 상황에 맞서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는 역할을 했다. 부족 간의 싸움은 대개 사냥터를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되었고, 살육이나 대학살로 변질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일 수 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대개는 그것으로 싸움이 종결되었다. 대개는 폭력을 더 사용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쌍방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인디언들은 서구의 초기 정복자들과 맞서 싸울 때, 오랫동안 그저 창으로 그들의 어깨를 때리는 방식으로만 대응했다. 그럼으로써 자기들이 창으로 찌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하지만 서구인들은 총을 쏘는 것으로 그것에 대응했다. 비폭력은 한쪽만 실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쥐 세계의 계급 제도
낭시 대학 행동 생물학 연구소의 한 연구자가 쥐들의 수영 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동물의 사회 행동'이라는 저서를 낸 바 있는 이 연구자의 이름은 디디에 드조르. 그는 쥐 여섯 마리를 한 우리 안에ㅔ 넣었다. 우리의 문은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수영장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먹이를 나눠 주는 사료 통은 수영장 건너편에 있었다. 따라서 쥐들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헤엄을 쳐서 수영장을 건너야만 했다. 여섯 마리의 쥐들이 일제히 헤엄을 쳐서 먹이를 구하러 갔을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이 이내 확인되었다. 마치 쥐들 사이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여섯 마리의 쥐는 다음과 같은 네 부류로 나뉘었다. 두 마리는 수영을 해서 구해온 먹이를 빼앗기는 피착취형이었고, 다른 두 마리는 헤엄을 치지않고 가만히 있다가 남이 구해 온 먹이를 빼앗아 먹는 착취형이었으며, 한 마리는 헤엄을 쳐서 구해 온 먹이를 빼앗기지도 않고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는 독립형이었고, 마지막 한 마리는 헤엄을 치지도 않고 먹이를 빼앗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형이었다.
먼저 피착취형에 속하는 두 쥐가 먹이를 구하러 가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우리로 돌아오자, 착취자들은 그들을 공격해서 애써 가져온 먹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피착취자들은 착취자들이 배불리 먹고 나서야 남은 것을 먹을 수 있었다. 착취자들은 헤엄을 치는 법이 없었다. 그저 헤엄치는 쥐들을 때려서 먹이를 빼앗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독립적인 쥐는 튼튼하고 힘이 세기 때문에 스스로 헤엄을 쳐서 먹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착취자들의 압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의 대가를 온전히 누렸다. 끝으로 천덕꾸러기 쥐는 헤엄을 칠 줄도 모르고 헤엄치는 쥐들에게 겁을 줄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저 다른 쥐들이 싸우다가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주워 먹을 수밖에 없었다.
드조르는 스무 개의 우리를 만들어서 똑같은 실험을 해보았다. 어느 우리에서나 똑같은 역할 배분, 즉 피착취형 두 마리, 착취형 두 마리, 독립형 한 마리, 천덕꾸러기형 한 마리가 나타났다.
드조르는 그러한 위계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더 잘 이해하기위해, 착취형에 속하는 쥐 여섯 마리를 따로 모아서 우리에 넣어 보았다. 그 쥐들은 밤새도록 싸웠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그들의 역할은 똑같은 방식으로 나뉘어 있었다. 피착취형이나 독립형이나 천덕꾸러기 형에 속하는 쥐들을 각 유형별로 여섯 마리씩 모아서 같은 우리에 넣어 보았을 때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났다.
드조르는 더 커더란 우리에 2백 마리의 쥐들을 넣어서 실험을 계속했다. 쥐들은 밤새도록 싸움을 벌였다. 이튿날 아침 세 마리의 쥐가 털가죽이 벗겨진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 결과는 개체 수가 증가할수록 천덕꾸러기형의 쥐들에 대한 학대가 가혹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낭시 대학의 연구자들은 이 실험의 연장선에서 쥐들의 뇌를 해부해 보았다. 그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쥐는 천덕꾸러기나 피착취형 쥐들이 아니라 바로 착취형 쥐들이었다. 착취자들은 특권적인 지위를 잃고 노역에 종사해야 하는 날이 올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장례
최초의 장례는 약 12만 년 전에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나사렛 남동쪽에 있는 카프제 언덕의 동굴에서 무덤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적지에서 현생 인류의 해골과 부장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발굴했다.
장례는 사후 세계에 대한 상상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천국과 지옥과 이승의 삶에 대한 심판이라는 관녀들이 나타났고, 나중에는 종교가 생겨났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시신을 쓰레기터에 버리던 때에는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었다. 인간이 먼저 세상을 떠난 다른 인간에게 특별한 대접을 해주게 되면서 종교심뿐만 아니라 경이로운 상상의 세계가 나타났다.
침팬지들을 상대로 한 실험
비어 있는 방에 침팬지 다섯 마리를 들여보낸다. 방 한복판에는 사다리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에는 바나나가 놓여 있다.
한 원숭이가 바나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먹기 위해 사다리로 기어오른다. 하지만 원숭이가 바나나에 다가가자마자 천장에서 찬물이 분출하여 원숭이를 떨어뜨린다. 다른 원숭이들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바나나를 잡아 보려고 한다. 모두ㅏ 찬물에 뒤집어쓰고 결국 바나나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한다.
그다음에는 천장에서 찬물이 분출하지 않게 해놓고 물에 젖은 원숭이 한 마리를 다른 원숭이로 대체한다. 새 원숭이가 들어오자마자 원래부터 있던 원숭이들은 사다리로 올라가는 것을 말린다. 저희 나름대로 새 원숭이가 찬물을 뒤집어쓰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새 원숭이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다른 원숭이들이 자기가 바나나를 먹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완력을 쓰기로 하고 자기를 제지하려는 원숭이들과 싸운다. 하지만 한 마리 대 네 마리의 싸움이라서 새 원숭이는 뭇매를 맞고 만다.
다시 물에 젖은 원숭이 한 마리를 새 원숭이로 대체한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앞서 교체되어 들어온 원숭이가 덤벼들어 그를 때린다. 그게 새로 들어온 자를 맞이하는 방식이라고 저 나름으로 이해한 것이다. 새 원숭이는 사다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겨를도 없었다. 말하자면 구타 행위는 이미 바나나와 무관해진 셈이다.
물을 뒤집어쓴 나머지 세 원숭이도 차례로 나가고 대신 물에 젖지 않은 원숭이들이 들어온다. 그때마다 새로 들어온 원숭이는 들어오자마자 매질을 당한다.
시고식은 갈수록 난폭해진다. 급기야는 여럿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새로 들어온 원숭이에게 뭇매를 놓는다.
여전히 바나나는 사다리 꼭대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다섯 마리 원숭이는 바나나를 잡으려다 물을 뒤집어쓴 적도 없으면서 그것에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드르이 유일한 관심사는 뭇매를 맞을 새 원숭이가 어서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문을 살피는 것이다.
이 실험은 한 기업에서 나타나는 집단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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