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까지 109일 남은 오늘의 괴담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면, [확실히 그 이야기 엄청 무섭지만, 진짜 있던 일이야?] 하고 반문하곤 한다.

 

 

 

차라리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감 있게 느껴질 정도기 때문이겠지.

 

 

 

이것은 내가 실제로 체험한, 기묘한 이야기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해 어느 아침.

 

 

 

평소처럼 집 근처에 사는 친구 둘과 함께, 등교길을 걷고 있었다.

 

 

 

한동안 이야기하면서 걷고 있는데, 시야에 앞에서 걸어가는 여자아이 2명이 들어왔다.

 

 

 

 

 

한명은 나와 같은 반 아이고, 다른 한명은 다른 반 여자아이였다.

 

 

 

나는 같은 반 여자아이에게 시선이 못박혔다.

 

 

 

"온몸이 샛보랗게" 물들어 있었니까.

 

 

 

 

 

"새빨갛다" 거나, "새파랗다" 거나, "샛노랗다" 는 말은 있지만, "샛보라색이다" 라는 말은 없을 터이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을 그대로 말하자면, 머리카락 끝부터 온몸에 걸친 옷, 신발까지 그야말로 온몸이 보라색 페인트라도 뒤집어 쓴 양 샛보랬다.

 

 

 

평소 그런 괴상한 꼴을 하는 아이도 아니고, 평범한 여자아이다.

 

 

 

 

 

평소였다면 [우와, 저것 봐!] 하고 친구들에게 말을 꺼냈을텐데, 어째서인지 그날은 왠지 말해서는 안된다고 할까,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다.

 

 

 

입을 열었다가는 나도 모르는 공포가 덮쳐올 것 같은, 마치 가볍게 가위에 눌린 것 같은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와 함께 걷고 있던 친구 두명도, 확실히 그 샛보란 여자아이가 시야에 들어올 터였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리키거나 하지도 않는다.

 

 

 

평범하게 게임 이야기 같은 걸로 신을 내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앞에서 걷고 있던 그 아이들을 따라잡을만큼 가까워졌다.

 

 

 

 

 

친구들은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이상하다.

 

 

 

스쳐지나가는 순간,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졸도할 뻔 했다.

 

 

 

피부색까지 샛보랬다.

 

 

 

얼굴 피부, 팔 피부, 다리 피부, 모두 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자, 여자아이 두 명은 [안녕.] 하고 인사를 해왔다.

 

 

 

[어어.] 하고, 같이 걷던 친구들이 대답을 해준다.

 

 

 

나만 혼자 오그라든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역시 너무 이상하다.

 

 

 

누구 하나 저 여자아이가 온몸이 샛보랗다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너 왜 놀라는거야?] 

 

 

 

 

 

친구들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몰래카메라인가 싶을 정도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까지 정성을 들여 몰래카메라를 할 이유가 없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나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거라고 깨달았다.

 

 

 

 

 

몰래카메라가 아니라는 건 교실에 들어서자 더욱 확실해졌다.

 

 

 

다른 아이들도 그 아이가 보라색이니 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평범하게 대화하고 있었으니까.

 

 

 

출석을 부를 때나 수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담임 선생님조차도 그것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확신했다.

 

 

 

그날 내 머릿속에는 종일 물음표만이 가득했다.

 

 

 

 

 

수업 중에도 전혀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저 아이는 왜 보라색일까, 하고 다른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될텐데 싶겠지만, 아까도 말했듯 그럴 수가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이것에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 는 본능적인 꺼리낌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물며 당사자인 여자아이에게 직접 물어보겠다는 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리고 하교 직전, 청소시간.

 

 

 

그룹으로 나뉘어 학교 이곳저곳을 청소하게 된다.

 

 

 

 

 

우리 그룹이 담당한 곳은, 학교 건물 뒤뜰 쪽 어스름한 구석이었다.

 

 

 

그 보랏빛 여자아이도 같은 그룹이었다.

 

 

 

내 눈앞에, 온몸이 보라색인 그 아이가 빗자루로 쓰레기를 쓸어담는 뒷모습이 보인다.

 

 

 

 

 

주변에는 나와 그 아이밖에 없었다.

 

 

 

물어보려면 지금밖에는 기회가 없다.

 

 

 

[어, 어째서, 어...]

 

 

 

 

 

형언할 수 없는 꺼림칙한 기분이 말을 막아세워, 질문을 건네려해도 입이 잘 움직이질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호기심이 공포심을 넘어섰다.

 

 

 

과감히 그 여자아이에게 다가가서, [어째서 오늘 온몸이 보라색이야?] 하고 물었다.

 

 

 

 

 

그 순간, 여자아이가 몸 전체를 나에게 돌리더니 [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 눈을 치켜뜬 채,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리고 절규했다.

 

 

 

평소 그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귀신 같은 모습으로, 샛보란 절규를 내뱉는다.

 

 

 

나도 그만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빗자루를 내던지고 교실로 도망쳤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청소시간이 끝나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그 사이 교실에서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종례가 끝나고, 하교시간이 되자 나는 어떻게든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매일 함께 하교하는 친구는 그날 동아리 활동이 있어서, 나 혼자 하교하는 날이었다.

 

 

 

신발장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걷고 있는데, 앞에서 그 보라색 여자아이가 친구 두명과 함께 걷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아이도 동아리 활동을 하러 가는지, 체조복을 입고 이쪽으로 걸어온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데, 스쳐지나가는 순간 그 아이가 나직이 말했다.

 

 

 

[이제 더는 물어보지 마.]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감정이나 억양이 실린 게 아니라, 마치 외계인이나 로봇이 말하듯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이제 더는 물어보지 마.] 하고.

 

 

 

 

 

나는 달려서 학교를 뛰쳐나왔다.

 

 

 

집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게임을 하고, 그 일에 관해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나름대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불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하자, 다시 공포감이 엄습했다.

 

 

 

만약 내일도 그 아이가 보라색이라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니, 학교에 가는 생각만 해도 우울해졌다.

 

 

 

 

 

부모님에게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우울한 기분인 채, 그날은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평소처럼 등교를 했다.

 

 

 

또 그 여자아이와 친구가 앞에서 걸어가고 있다.

 

 

 

여자아이는 평범하게 돌아와 있었다.

 

 

 

 

 

안도하는 순간, 어쩐지 눈물이 쏟아졌다.

 

 

 

같이 등교하던 친구들에게 놀림 받으면서도, 기뻐서 한동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여자아이와 지나치는 순간, 아직도 조금 무서워하며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피부색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안녕.], [안녕.] 하고 평범하게 인사를 나눴다.

 

 

 

그 후 졸업할 때까지, 그 아이가 다시 온몸이 샛보랗게 보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날 일도 두번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

 

 

 

 

 

도대체 그날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더는 물어보지 말라는 것은, 적어도 그 아이 자신은 보라색이 됐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는 것일까.

 

 

 

그 말은 생각만 해도 트라우마가 될 정도라, 그 이후에도 가끔 꿈에서 나오곤 했다.

 

 

 

 

 

겨우 최근 들어서야 환경과 가치관이 변하고 시간도 흘러, 그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다 꺼내놓을 수 있게 된 이야기다.

 

 

 

보라색이 되었던 그 친구도, 지금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다른 친구에게 전해들었다.

 

 

 

지금도 거리를 걷다 가끔 흰 머리를 보라색으로 물들인 할머니를 보거나 하면 깜짝깜짝 놀란다.

 

 

 

 

 

엑스맨 영화가 나왔을 때도 미스틱인가 하는 온몸이 새파란 여자 캐릭터를 본 순간 그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결국 중간에 영화관을 뛰쳐나왔을 정도다.

 

 

 

내게는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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