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제가 되짚어보겠습니다. 총 18명을 살해한 죄를 고백하시겠다고요?"
다니엘 형사는 부인의 눈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 놀림조마냥 뇌까렸다.
"네, 18명 전부 제가 살해했어요. 정말 바쁜 달이었죠!"
버튼 여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녀는 온 방이 환해질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마시던 차를 장난스레 저어보였다.
연이어 방긋 웃어보인 그녀는 백은발을 곱게 다듬어 진주 귀걸이와 꼭 맞게끔 매칭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고운 포즈로 앉아 있었다.
"선생님, 실례가 안 된다면 한번 여쭙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신다고 하셨죠?"
"78이에요." 버튼 여사가 발랄하게 답했다.
버튼 여사는 정말 멋지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었지만 다니엘 형사는 너무 지쳐있었고 도무지 노망난 사람을 상대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네 선생님, 오늘 찾아주셔서 감사드리겠고 조사는 내일 계속 하겠으니 오늘은 귀가하십시오."
"네네 형사님, 형사님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버튼 여사는 예의바른 웃음을 지어보이며 자리를 떴다.
여사의 등 뒤로 신기한 볼거리라도 본 양 군데군데 웃음이 터져나왔다.
"저기요, 형사님. 그 며칠 전에 왔던 노망난 할머니 또 오신 것 같은데요."
"아이고, 그냥 내 앞으로 보내."
제임스 경관의 말에 다니엘 형사가 한숨쉬며 답했다.
"형사님, 좋은 아침이에요!"
버튼 여사는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아 예 선생님 또 오셨네요. 죄송합니다만 성함이...."
"버튼이에요, 펄 버튼. 전화 주신다더니 연락이 없으셔서 찾아왔답니다.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연쇄살인범이라고."
"아 예, 죄송합니다. 그 피해자가 열 몇 명 된다고 하셨나요?"
다니엘 형사가 커피를 마시며 대충 답했다.
"이제 19명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손 씻으려구요."
버튼 부인이 발랄하게 대답했다.
"예 잘 알겠구요, 그럼 피해자 이름부터 말씀해보십시오."
"레이첼 맥길크리스트, 론 피스카텔리...."
버튼 여사는 침착하게 이름을 읊었고 다니엘 형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할머니, 노망나셨으면 병원에 가셔야지 저희한테 이러시면 안됩니다."
다니엘 형사는 버튼 여사가 말해준 모든 이름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며,
일부는 대외적으로 행방불명이 보고되기도 전인 인물이라는 것도 몹시 잘 알고 있었다.
"노망은 무슨, 다 저희 집 냉장고에 얌전히 있어요. 그대로는 안 들어가서 좀 토막내긴 했지만요.
전부 행방불명 처리가 되진 않았을 테지만 저희 집에 오셔서 조사해보시면 아실 거예요, 다 잘 담겨있으니까요."
치열할 것도 없는 법적 공방 끝에 버튼 여사는 가석방 및 외출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며 보안 등급이 가장 낮은 교도소에 배정되었다.
뉴스 기자들은 그야말로 벌떼같이 몰려들어 이 "죽여주는 할머니"를 인터뷰할 기회를 얻겠다며 난리를 피워댔다.
이윽고 미국의 모든 채널에서 버튼 여사의 우아한 미소가 연일 스크린을 채웠다.
"아 뭐, 이 나이가 되니까 은퇴해야겠다 싶더라구요. 근데 실버타운이란 게 공짜가 있긴 한가요?
여긴 공짜로 매일 샤워할 수 있죠. 그리고 제 나이엔 넘어지는 것도 걱정인데 혹시나 다칠까 CCTV도 참 꼼꼼히 돼있더라구요.
매일 삼시세끼 영양소를 고려해 꼬박꼬박 챙겨주고 도서관에서 책도 마음껏 볼 수 있고, TV도 있죠.
친절한 의사에 무료로 건강검진도 해주고 약도 챙겨주는걸요."
"제게 정말 죄를 묻고 싶었다면 아무 실버타운에나 처넣으면 됐을 텐데 말이에요.
따뜻한 밥이라곤 볼 수가 없고, 일주일에 두 번 씻을까 말까 하고 코딱지만한 방 하나 주면서 월 4000불씩 내라고 했겠죠.
건강검진은 당연히 별도금액이 또 청구될 거구요."
그녀의 사고 이후 정치계는 노인 인권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들고 나오는 신인 정치가들로 북적였고,
노인 법안이 민생법안의 최우선순위로 대두되어 온 나라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노인 법안은 모두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는 노인 지원 예산을 80% 삭감하고 의원 월급을 올린 19명의 부패 정치가가 이미 잘 보여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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