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집 뒤편에는 작은 개울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살고 있던 집과는 별로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 있었기에
여름 방학 내내 어린 동생과 개울가를 찾아 함께 놀았습니다.
이미 성인이 된 몸이라
그다지 많은 것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함께 징검다리를 건너며 놀거나,
샌드위치를 아침 일찍 싸서 저녁까지 신나게 놀았던 기억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따뜻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생과 저는 가끔 그 개울가에서 낚시하기도 했는데,
집에 가지고 돌아가기도 미안한 조그만 은빛 송사리를 제외하곤 어떤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나름 큰 개울치고는 낚이는 물고기가 형편없이 작은 녀석밖에 없었기에,
그다지 놀 거리가 없어질 무렵, 시간 보내기용 낚시였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개울가를 찾던 어느 더운 여름날,
동생과 저는 드물게 아침 8시 알람 소리에 깨고 말았습니다.
당시 동생은 4학년을 막 끝마친 무렵이었는데 학교 성적에서 올 A를 맞은 상태였기에,
또한 저 역시도 우수한 성적으로 막 중학교를 졸업해 어른이 된 시기였기에
부모님께서는 상당히 기뻐하며 늦잠을 허락해주셨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역주 : 영미권/동남아권/일부 유럽 지역은 3월에 개학하는 우리와는 달리 9월에 개학해 다음 해 6월 정도에 학기가 끝납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유난히도 아침 햇살이 뜨거웠던 그 날,
우리는 수영복을 챙겨 매일같이 가던 개울로 뛰쳐나갔습니다.
평소 이 개울에선 어딘지 모를 한기가 느껴졌기에
수영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아 개울가에서만 놀곤 했는데,
어째서인지 그 날만큼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더위에 숨이 막혀
아무 생각도 없이 수영복을 입고 달려나갔다고 생각합니다.
동생과 달리기 시합을 하며, 도착한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평소 우울해 보이기만 했던 암녹색의 개울물은
마치 우리 눈앞에서 춤추듯 일렁였고,
물에 비친 더운 여름날의 포근하기만 한 햇살은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또 개울 저편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개울 바람은 들뜬 우리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동생과 저는 더위에 서로를 구속하고 있었던 셔츠를 훌렁 벗어 던졌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기에 물이 차가울 것이라는 생각은 어느 정도 하고있었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에 내리쬐는 햇살에 우리는 얼른 물로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어린 동생은 오랜만에 하는 수영에 기대가 넘쳤는지,
개울가에서 잠시동안 담그고 있었던 발을 뺀 채,
수영복도 입지 않은 발가벗은 상태로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동생 녀석이 물에 뛰어든 것과
잊고 있었던 개울가의 한기가 갑자기 심해진 것은 동시였습니다.
몇 초전까지만 하더라도
뜨거운 아침 햇살에 수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수면에 물보라가 튀며 동생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 순간,
내가 오직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불안감과 차가움뿐이었습니다.
" 적어도 수영복이라도 입고 들어가렴. "
" 형,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렇게 가려, 그냥 들어와! "
하지만 동생 녀석은 이런 불안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 재촉하며 물장구를 쳐댔습니다.
" 수영복을 입지 않으면 이상한 물고기가 달려들 수 있어, 빨리 수영복을 입지 못하겠니? "
계속해서 물장구를 치며, 물을 뿌려오는 녀석에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재촉하고 있었지만,
녀석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으며 물 속으로 들어올 것을 점점 부추겼습니다.
그렇게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놀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던 때에
아까와는 다른 어떤 기분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기 시작했습니다.
개울 물로 들어오라는, 아무 걱정 없이 차가운 물에
몸을 맡기고 즐겁게 놀라는
그런 종류의 형용할 수 없는 편안한 감정이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의 재촉과 물장구가 점점 더 심해질 무렵,
도저히 이런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저는
숨을 한껏 들이마신 채, 물로 다이빙했습니다.
물속은 바깥에서 보던 암녹색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진한 검정 녹색으로 물들어있었습니다.
햇빛이 개울 바닥까지는 닿지 않는 듯,
시야는 점점 어두워지며 확보되지 않았고,
물속에 가라앉은 나뭇가지는 수영해 나아갈 때마다 몸을 툭툭 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다이빙해 들어간 개울 바닥에 손을 닿은 순간,
저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커다란 물고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4 피트 정도의 크기에, 경사진 머리와 커다란 물갈퀴를 갖고 있던 녀석은
굉장한 위압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 역주 : 1 피트는 30.48cm 입니다. 4 피트는 121cm 저도 되겠습니다. ]
녀석은 제가 개울 바닥을 손으로 짚은 그 순간부터
내 주위를 서성이기 시작했고,
바닥을 힘껏 차 수면으로 상승할 때까지 내 곁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표면에 도착했을 때,
잠시 동안 잊었던 불안감과 한기가 또다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엄습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공포가 점점 내 몸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를 극복해보고자 동생에서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 나 물속에서 아주 큰 물고기 봤다! 아무래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
하지만, 이런 내 소리는 동생에게 닿지 못했습니다.
눈앞에서 실실거리며 웃고 있어야 할 동생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물에 빠진 척하는 놀이를 하던 동생이기에
당연히 그때까지만 해도 동생이 물에 빠진 척을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간 달랐습니다.
보통 잠수한 후, 5초 정도면 다시 올라와 깔깔거렸던 녀석이
10초 하고도 초침이 더 흘러갈 때까지 물 밖으로 나오질 않았습니다.
숨이 막히고,
아침에 느꼈던 한기가 점점 더 나를 지배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의아함에 동생이 사라졌던 자리로 점점 수영해 가던 무렵,
그렇게 찾아 해맸던 동생이 갑자기 물 위로 몸을 튕기며 올라왔습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를 보며,
녀석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에 압도당한 듯 소리 질렀습니다.
" 형, 어떤 게 나를 물었어. 형 어떤 게 나를 물었어. 형 어떤 게 나를 물었어..."
계속해서 무언가에 물렸다며 동생은 나에게 소리쳤습니다.
심장이 곧 폭발할 것만 같았습니다.
동생을 잃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무언가에 나 역시도 당할 것이라고 공포감에 압도되어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빨간색의 무언가가 동생 주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물에 탄 색소처럼 빠르게 암녹색 개울물은 점점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폭발했던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이성의 끈이 끊어지며,
저는 제가 낼 수 있는 제일 빠른 속도로 동생에게 헤엄쳐갔습니다.
물을 첨벙첨벙 튀겨가며 동생에게 접근할 때,
저는 물속에서 검은색의 무언가가 그를 향해 방향을 트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저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생각은 헤엄쳐 도망가자는 본능뿐이었습니다.
저는 동생의 한쪽 팔을 잡은 채, 개울가로 빠르게 헤엄쳐갔습니다.
아마 그때 냈던 속력을 저는 결코 요즘 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동생은 내가 팔을 잡고 전속력으로 수영하는 와중에도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허우적거렸습니다.
피는 점점 개울가에 퍼져나갔으며, 혈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동생의 비명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뒤돌아본 순간,
나는 우리 바로 뒤에 그 녀석이 따라붙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녀석은 얼굴을 수면 위로 내민 채 우리를 창백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후 이성을 놓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속에는 언제나 본능과 이성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었는지,
다행히도 저는 본능적으로 동생을 이끌고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물 밖으로 나오자 그저 느낌이라고 생각했던 혈향은 깊게 공기를 수놓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에 걱정이 더해져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분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파지는 팔과 다리를 신경 쓸 틈도 없이 저는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보고 말았습니다.
동생의 종아리에는 골프공 사이즈의 물린 자국이 있었습니다.
피에 잔뜩 절어 벗겨진 살 속 상처는
내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내 인생이란 영화 속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바로 난 동생을 끌며,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전 날까지도 기분이 좋아 보이셨던 부모님은
개울에서 보았던 그 녀석처럼 얼굴을 창백해 하시며,
우리를 이끌고 병원에 가게 되었고, 동생은 그렇게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동생은 정신적인 면으로나 육체적인 면으로나 흉터가 남았지만
생글생글 거리며 내 옆에 찰떡처럼 들러붙은 채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벌어진 후,
동생은 결코 물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창백하기만 한 녀석의 얼굴을 동생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술을 마실 때면 저에게 털어놓습니다.
여담으로,
저는 이 사건 이후,
여름 방학 동안 경찰서에서 조사 아닌 조사를 받았습니다.
동생의 종아리에 남은 상처 자국이,
사람의 이빨 자국 모양과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되는 경찰서를 이전에도 이후에도 가지 않았던 저로서는
너무나도 큰 일이었습니다.
후에 제가 동생이랑 갔던 개울에서
사람 이빨 모양의 이를 가진 거대한 물고기가 지역 낚시꾼에게 잡히며,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나름 큰 개울치고 송사리 크기의 형편없는 물고기만 있던 것을 수상히 여긴
지역 낚시꾼이 그물을 쳐서 잡은 것으로 지역 신문에 3면을 장식했습니다.
왜 녀석은 제가 아닌 동생을 물었겠느냐고 저는 악몽에 시달리며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녀석은 제가 아닌 동생을 택했고,
이미 놓친 사냥감을 그렇게 끈질기게 개울가까지 따라왔던 것이냐고 말입니다.
추측해보건대, 송사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잡아먹어 버린 녀석에게
저와 함께 신나게 노는 동생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였을라고 생각합니다.
동료조차도 모두 잡아먹어버려
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운 개울 바닥을 흩고 있던 녀석에게
아름다운 햇살 속 나를 의지해 가며 웃고 있던 동생의 모습은
증오를 느끼게 하기엔 충분할 것이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개울에서 느껴졌던 한기는
녀석이 증오스럽게 우리를 바라보며 내뿜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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